얼마 전 지인들 모임이 있어서 오랜만에 나갔다가 귀여운 손님을 만났습니다. 모임원 중 한 분이 초등학교 1학년 늦둥이를 데리고 오셨는데, 어른들 사이에서 관심을 독차지하던 아이가 어느 순간 테이블 한켠에 혼자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었습니다. 뭐 하냐고 물었더니 다음 주에 받아쓰기 시험이 있다면서 연습 중이라고 하더군요. 그 모습을 보다가 자연스럽게 우리 아이들 어릴 때가 떠올랐습니다. 이제는 다 성인이 됐지만, 받아쓰기 시험지를 들고 오던 날들이 생각나더라고요. 소리 나는 대로 쓰는 아이들, 겹받침 앞에서 늘 막혔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받아쓰기를 특별히 못 하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불러주는 대로 받아 쓰는 건 곧잘 했거든요. 사실, 매 학기 방학때마다 아이한테 부족하거나 필요한 학습을 시키는 편이라 1학년에 중요한 받아쓰기를 시켰거든요. 방학을 이용한 학습 방법은 👉 초등학교 저학년 겨울방학 알차게 보내기 글에 정리를 해두었습니다. 참고하세요. 그런데 딱 하나, 겹받침이 나오면 어김없이 틀려 왔습니다. "의자에 앉다"를 불러주면 "안다"라고 쓰고, "~하지 않다"도 "안다"나 "안타"라고 써 오는 식이었습니다. 틀렸다고 한글을 모르는 게 아니었습니다. 들리는 소리를 그대로 쓴 것뿐이니까요. 아이 입장에서는 나름 논리적인 실수인 셈이었습니다. 한글은 영어와 달리 자음과 모음의 규칙이 꽤 일관적이라, 기본 자모음만 알면 처음 듣는 단어도 어느 정도 비슷하게 써낼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겹받침처럼 소리와 표기가 다른 부분에서만 딱 걸리는 거였습니다. 하루 날 잡아 겹받침만 정리해줬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주말에 시간을 내서 겹받침을 한 번 쭉 정리해줬습니다. 어렵게 접근한 건 아니었습니다. 초등 교과서에 자주 나오는 겹받침은 생각보다 종류가 많지 않거든요. ㄵ, ㄶ, ㄾ, ㅀ 정도가 핵심입니다. 스케치북에 크게 써놓고 색깔 펜으로 표시해가면서, 단어 모양과 뜻을 같이 ...
큰아이가 중2 때였습니다. 화장품 가게를 친구들과 돌아다니며 립틴트를 고르는 아이를 보면서, 저는 그저 한숨만 나왔습니다. 극건성 피부인데도 친구들 따라 쿠션을 덕지덕지 바르더니 결국 얼굴이 뒤집어졌고, 피부과를 몇 달이나 다녀야 했습니다. "엄마 말이 그냥 메아리처럼 들렸어요"라고 성인이 된 지금 회상하는 걸 보면, 그 시기 부모의 말은 정말 공허하게 들리나 봅니다. 그런데 공부는 더했습니다. 책상 앞에 앉히는 것조차 전쟁이었고, 약속은 늘 물거품이 됐습니다. 소비적 쾌락에 빠지는 중학생, 왜 그럴까 중학교 시기는 발달심리학에서 '제2반항기'로 분류됩니다. 이 시기는 부모보다 또래집단의 가치가 우선시되는 시기로, 자아정체성(Identity)을 형성하는 결정적 분기점입니다. 쉽게 말해, 친구들 사이에서 어떻게 보이는가가 부모님 말씀보다 훨씬 중요해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SNS, 게임, 패션, 심지어 명품까지 관심이 쏠리게 됩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이 시기 아이들은 소비적 쾌락—먹고 놀고 소비하는 즐거움—에 정말 쉽게 빠집니다. 친구들과 카톡하고 틱톡 보고 게임하는 게 공부보다 훨씬 재미있으니까요. 문제는 이런 소비적 쾌락만으로는 근본적인 만족감을 얻을 수 없다는 겁니다. 여행 가서 하루 종일 놀기만 하면 오히려 무기력해지는 것처럼, 아이들도 계속 놀기만 하면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집니다. 실제로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출처: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 중학생의 약 40%가 학습 무기력을 경험하며, 이 중 상당수가 또래관계 및 소비문화에 과도하게 노출된 경우로 나타났습니다. 아이들은 생산적 쾌락—노력해서 얻는 성취감—이 부족하면 알 수 없는 답답함과 우울함에 시달리게 됩니다. 생산적 쾌락, 성취가 왜 중요한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발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야 삶의 이유를 느낍니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이라고 부릅니다. 자기효능감이란 '내가 어떤 일을 해낼 ...
아이가 울면서 집에 들어오던 날, 저는 처음엔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습니다. 며칠 전만 해도 "엄마, 나 다 맞은 것 같아!" 하고 현관문을 박차고 들어오던 아이였으니까요. 그런데 3일 만에 표정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100점인 줄 알았는데 92점이 된 날 우리 큰아이는 수학을 꽤 잘하는 편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내내 수학만큼은 늘 믿음직했고, 저도 그 부분만큼은 걱정을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중1 자율학기제라 1학기에는 정식 시험이 없는 학교가 많은데, 우리 아이 학교 수학 선생님은 달랐습니다. 단원평가와 쪽지시험을 수시로 보시더니 1학기 막바지에 서술형이 대거 포함된 20문제짜리 시험을 3일 전에 예고하고 치르셨습니다. 시험이 끝나고 선생님이 칠판에 정답을 써주셨는데, 아이가 하나하나 맞춰보고는 전부 맞았다며 엄청나게 기뻐했습니다. 집에 오는 내내 신이 났고, 저도 잘했다고 한껏 칭찬해줬습니다. 그런데 3일 뒤, 채점된 시험지를 돌려받고 온 날 아이가 눈물을 글썽이며 들어왔습니다. 92점이라고. 답은 전부 맞았는데 서술형과 풀이 과정에서 감점이 됐다는 겁니다. 시험지를 펼쳐보고 나서야 저도 바로 시험지를 들여다봤습니다. 보고 나니 왜 그렇게 됐는지 금방 이해가 됐습니다. 아이는 문제를 받자마자 머릿속으로 먼저 계산을 끝낸 뒤, 시험지 여백에 각 단계의 값만 적어두고 마지막 답을 써넣는 방식으로 풀었던 겁니다. 특히 마지막 세 문제는 선생님이 "왜 그렇게 식을 세우게 됐는지 설명을 쓰고 계산식까지 쓰시오"라고 아주 명확하게 제시하셨는데도, 아이는 ①, ②, ③ 이렇게 숫자만 나열해놓고 답을 냈습니다. 자기만 알아볼 수 있는 방식으로요. 아이가 다 알고 있었다는 건 저도 압니다. 그게 더 속상했습니다. 100점짜리 실력인데 92점이 된 것이니까요. 아는 것과 쓰는 것은 다릅니다 이 일을 겪고 나서 한 가지를 새로 알게 됐습니다. 수학 개념을 이해하는 것과 그 풀이를 글로 설명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능력이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