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결정력 키우는 법 (부모역할, 분리개별화, 대화법)
청소년기 자녀를 둔 부모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고민을 합니다. "우리 아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힘이 부족한 것 같다." 실제로 요즘 청소년들은 예전 세대보다 자기 인생을 주도적으로 꾸려가는 능력, 즉 자기결정력이 약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저 역시 큰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한 직후 왕따 문제를 겪으면서, 부모가 얼마나 개입해야 하는지, 아이 스스로 결정하게 두는 게 맞는지 심각하게 고민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의 선택이 지금 돌아보면 아이의 자기결정력을 키우는 결정적 계기가 됐습니다.
자기결정력이란 무엇이고 왜 중요한가
자기결정력(自己決定力)이란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며 판단해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합니다. 여기에는 단순히 마음속으로 결정하는 것을 넘어, 자기가 생각하고 결정한 것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실행력까지 포함됩니다. 쉽게 말해 자기 인생을 주도적으로 꾸려갈 수 있는 힘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이 현장에서 관찰한 바에 따르면, 예전에 비해 요즘 청소년들은 자기결정력이 현저히 부족한 경향을 보인다고 합니다(출처: 보건복지부). 과거에는 부모가 일일이 학원 스케줄을 짜주거나 유망 직종을 정해주는 경우가 드물었지만, 지금은 미디어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성공 사례를 쉽게 접하면서 부모들이 아이 인생의 '로드맵'을 직접 그려주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정작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선택이 자신에게 맞는지 판단할 기회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저 역시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까지는 학원 스케줄을 제가 정해주고, 어떤 문제집을 풀어야 하는지까지 일일이 관여했습니다. 그런데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아이가 갑자기 "엄마, 저는 제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더군요. 그 순간 제가 아이의 결정권을 빼앗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부모의 불안이 만드는 수동적인 아이
왜 요즘 부모들은 유독 불안감이 높을까요? 전문가들은 SNS와 각종 미디어를 통해 다른 아이들의 성취를 실시간으로 접하면서 부모들의 조급함과 불안이 커졌다고 분석합니다. "누구는 어느 학원을 다닌대", "요즘은 선행을 어디까지 해야 한대" 같은 정보가 끊임없이 들려오다 보니, 우리 아이가 뒤처지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이런 부모의 불안은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달됩니다. 부모가 정해준 방향대로만 달려오던 아이는, 입시 제도가 바뀌거나 성적이 예상보다 나오지 않을 때 갑자기 방향을 잃어버립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뭘 해야 할지,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며 무기력해지는 청소년들이 늘고 있는 이유입니다. 심지어 명문대에 합격한 후에도 갑자기 무너지는 학생들이 있는데, 이는 대학 입시까지는 부모와 선생님이 정해준 '정답'이 있었지만, 대학에 들어가면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큰아이가 중학교 입학 직후 왕따를 당했을 때, 제 불안감이 극에 달했습니다. 당장 학교에 찾아가서 상황을 정리하고 싶었고, 가해 학생 부모를 만나 따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엄마, 제가 스스로 해결해 볼게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한 달 동안 속이 타들어갔지만, 결국 아이는 혼자 급식을 먹으며 버텨냈고, 진심으로 자기를 좋아해주는 친구들을 만나면서 상황을 역전시켰습니다. 만약 제가 당장 개입했다면, 아이는 오히려 더 고립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분리개별화, 부모도 함께 겪는 성장통
분리개별화(分離個別化, Separation-Individualization)는 원래 발달심리학 용어로, 아이가 부모로부터 심리적·신체적으로 독립해가는 과정을 뜻합니다. 걷기 시작한 아기가 엄마 곁을 떠나 탐색하다가 불안하면 엄마를 돌아보고, 엄마가 끄덕여주면 다시 나아가는 모습을 떠올리면 됩니다. 청소년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는 부모의 품을 떠나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려 하고, 부모는 그 과정을 견디며 아이를 보내줘야 합니다.
중요한 건, 분리개별화는 아이만의 과업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부모 역시 "내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이제 내 곁을 떠나는구나"라는 상실감과 거리감을 느끼며, 이를 견뎌내야 합니다. 이 상실감을 견디지 못하면 부모는 "넌 왜 그랬어", "너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면서", "맨날 말만 하고 실제로 하는 건 없잖아" 같은 비난과 탓을 하게 됩니다. 혹은 "이게 맞는 거야, 엄마 말이 맞아"라며 아이의 의견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끌고 가려 합니다.
실제로 수능 선택과목을 정할 때도 부모와 자녀가 심하게 다투는 경우가 많습니다. "난 이 과목이 싫은데", "난 이 과목이 더 좋은데"라는 아이의 말을 무시하고, "요즘 트렌드는 이거래", "이 과목을 받아야 성적을 잘 받을 수 있어"라며 부모가 밀어붙이는 식입니다. 저 역시 예전에는 이런 실수를 자주 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제가 아이의 독립을 두려워했던 거죠.
- 아이의 말을 끝까지 경청한다
- 부모의 걱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되, 강요하지 않는다
- 아이가 스스로 판단할 시간을 충분히 준다
위 세 가지만 지켜도 분리개별화 과정에서 부모와 자녀 모두 덜 힘들어집니다.
아이와 충돌할 때 절대 하지 말아야 할 2가지 말
사춘기 아이들이 반항하고 부모 말에 반대할 때, 부모가 가장 조심해야 할 말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넌 왜 그것도 알아서 못 하니?"처럼 돌려 말하는 것입니다. 부모는 "학원 갔다 오면 숙제를 바로 해야지"라고 직접 말하면 되는데, "너는 몇 학년인데 아직도 스스로 못 하니?"라며 에둘러 비난합니다. 이런 말은 아이에게 "엄마가 나를 믿지 않는구나", "나는 형편없는 사람이구나"라는 상처만 남깁니다.
둘째는 "너는 틀렸어, 이게 맞아"라며 일방적으로 단정짓는 것입니다. 아이가 아이돌이 되고 싶다거나, 게임 개발자가 되고 싶다고 말할 때, "그건 현실성이 없어", "그건 꿈도 못 꿔"라고 차단하는 식입니다. 차라리 "그 꿈을 이루려면 어떤 과정이 필요한지 한번 알아볼까?", "학원이나 오디션을 한번 경험해보는 건 어때?"라고 제안하는 게 훨씬 낫습니다.
실제로 연기나 춤을 배우러 학원에 가보면, 아이들은 대부분 자기보다 훨씬 잘하는 친구들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또 처음 몇 달은 바른 자세 잡기, 발성 연습 같은 기초 훈련만 반복하면서 "이게 생각보다 훨씬 힘들구나"를 체감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아이는 스스로 "이게 내 길이 맞는지" 판단할 기회를 얻습니다. 만약 그 고된 시간을 견뎌낸다면, 그건 진짜 소질이 있거나 근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아, 이건 나랑 안 맞아"라고 깨닫는다면, 그것도 귀중한 자기 이해의 과정입니다.
저는 큰아이가 왕따 문제를 겪을 때, "엄마가 학교 가서 얘기할까?", "그 애 엄마한테 연락해볼까?"라고 여러 번 물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계속 "괜찮아요, 제가 해볼게요"라고 답했습니다. 제가 한 일은 그저 "엄마는 네 편이야", "힘들면 언제든 얘기해"라고 응원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 한 달이 제 인생에서 가장 긴 한 달이었지만, 결국 아이는 혼자 힘으로 친구들을 얻었고, 그 경험은 아이를 훨씬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자기결정력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고, 실패하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조금씩 자라납니다. 부모의 역할은 그 과정에서 불안을 견디며 아이를 지켜보고, 아이가 넘어졌을 때 "괜찮아, 다시 해봐"라고 응원해주는 것입니다. 제 경험상, 부모가 먼저 한 발 물러서야 아이가 비로소 한 발 앞으로 나아갑니다. 지금 당장은 답답하고 불안하더라도,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세요. 그 기다림이 결국 아이를 가장 빠르게 성장시킵니다.
